다리꼬기…샤론 스톤, 영원한 섹스심볼이 되다
영화가 관객을 긴장하게 하는 건 샤론 스톤의 무릎 사이에서 도발되는 몇 초간의 ‘그 장면’ 때문만은 아니다. ‘본능(instinct)’이란 단어는 내부를 뜻하는 ‘in’과 ‘찌르다’를 의미하는 ‘stinct’이 결합한 합성어이다. 스스로 찌르고 몰아세워서 결국 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내 안에 그 무언가, 영화에서 ‘그 무언가’란 찌름의 도구 얼음송곳(icepick)과 깊은 관련이 있다. 샤론 스톤의 매혹적인 눈빛이 가득한 영화. 얼음송곳은 바로 그녀의 눈빛이다. 스톤의 뇌쇄적인 이미지와 함께 영화 전반에서 충실한 조연 역할을 하는, 그리고 살인의 모든 현장에 등장하는 얼음송곳. 섹시한 악녀 캐서린 트래멜을 상징하는 도구! 영화 ‘원초적 본능’의 트레이드 마크인 노팬티 차림의 샤론 스톤이 양다리를 번갈아 가며 꼬아 대는 장면, 아마도 영화 사상 가장 많이 회자되어온, 그리고 남성들이 가장 많이 반복과 정지 버튼을 번갈아 눌러가며 보았을, 바로 그 ‘영화의 한 장면’. 이 한 장면으로 영화는 에로틱 스릴러의 클래식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무명에 가까웠던 샤론 스톤이라는 배우를 할리우드 역사에 영원히 남는 섹스의 여신, 그리고 당대 최고의 섹스 심볼로 등극시킨다. 올해로 개봉 30주년을 맞은 ‘원초적 본능’의 로튼 토마토 지수는 56%에 불과하다. 허점 많은 플롯과 심리상담가 베스라는 제3의 인물로 인한 사건들의 개연성 부족 등 영화가 지닌 문제점들은 끝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이 영화는 외설 시비 덕분에 초대박 흥행 기록을 세운다. 당연히 스톤의 존재감이 최고조로 부각됐다. 히치콕 풍의 긴장과 누아르 분위기에 어울리는 미모와 목소리를 지닌 배우를 찾고 있던 폴 버호벤 감독은 1992년 ‘토털 리콜’(1990)에 악역으로 출연했던 스톤에게 캐서린 역을 제안한다. 멕 라이언, 미셸 파이퍼, 줄리아 로버트, 킴 베이싱어 등 13명의 여배우들이 과다한 알몸 노출, 리얼한 섹스신을 이유로 출연을 거절한 뒤였다. 34세의 B급 배우 스톤은 한 시대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를 ‘본능적’으로 꿰차버린다. 스톤처럼 완벽하게 섹시미와 두뇌를 겸비한 ‘배드 걸’은 일찍이 없었다. 스톤은 이후 ‘원초적 본능’의 절정에 다시 오르지 못했다. 1995년 ‘카지노’에서 로버트 드 니로의 상대역 진저 맥키나 역으로 골든글로브 여우 주연상을 수상하지만 오스카상에서는 후보 지명을 받는 데 그친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인간의 원초적 본능에는 성욕 외에 폭력이 있다. 폭력은 동물이라면 모두 갖고 있는 본능이다. 배가 고프니까 음식을 먹는다. 음식이 없으면 빼앗아서라도 먹어야 한다. 빼앗기 위해서는 폭력이 동원돼야 하고 종종 상대를 죽여야 할지도 모른다. 프로이트는 우리의 자아 안에 잠재해 있는 폭력 본능을 이드(ID)라고 불렀다. 성욕(libido)은 이드의 한 갈래이다. 프로이트는 이를 자생적 정신 에너지라고 했고, 칼 융은 더 나가서 생명의 에너지라고까지 해석했다. 캐서린의 농염한 미모는 ‘본능’이라는 제목의 원색적인 이미지와 얼음송곳이 주는 폭력성과 어울려 에로와 스릴의 균형을 적절히 유지한다. 캐서린은 관능미를 뿜어내면서 남자들을 유유히 정복해간다. 남녀 모두를 상대로 섹스를 즐기지만, 결코 천박하지 않다. 캐서린의 애인이며 한물간 록스타 자니 보즈가 변태적인 섹스 도중 얼음송곳으로 마구 찔린 채 살해된다. 캐서린이 자연스럽게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다. 그녀의 베스트셀러 소설에도 살해 도구로 사용됐던 바로 그 얼음송곳. 실제와 소설 속 살인이 놀라운 일치를 이룬다. 술, 담배, 코카인 그리고 섹스에 중독된 샌프란시스코 경찰국의 배드 캅(bad cop) 닉 커란(마이클 더글라스)에게 사건이 배당되고 캐서린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닉의 수사에 응한다. 버클리에서 문학과 심리학을 전공했고 백만장자의 상속녀인 그녀가 정말 그토록 끔찍한 살인을 저질렀을까? 5명의 노련한 경찰들이 그녀를 번갈아 가며 심문한다. 그러나 조금도 동요치 않는 절제된 감정과 언어의 유희로 응대하는 캐서린에게 조롱당할 뿐이다. 닉은 캐서린의 치명적 매력에 끌리면서도 그녀가 연루된 과거의 살인 사건들을 들추어낸다. “살인은 흡연과 달라. 담배는 그만둘 수 있으니까”라는 그녀의 말. “난 당신을 사랑해. 하지만 당신을 잡아넣을 거야”라는 그의 말. 두 사람의 사이코섹슈얼 게임이 시작된다. 닉은 어느 시점에서 그를 죽일 수도 있는 여자라는 두려움을 안고도 캐서린과의 섹스를 거부하지 못한다. 상대를 뛰어넘는 지능으로 캐서린은 자신의 소설 ‘슈터’에 닉을 등장시킨다. 실제로 민간인 4명을 총으로 쏴 죽인 닉의 아픈 경험을 조롱하며 자신의 욕망의 제물로 삼고자 함을 예고하듯. 관음과 탐닉의 과정을 거쳐 캐서린의 성적 쾌락은 끝내 치명적 ‘절정’에 도달한다. 그녀는 픽션과 현실을 교묘히 오가며 살인의 형식으로 허구와 리얼리티를 잔혹하게 가른다. 캐서린의 살인 게임, 그 오르가슴의 순간에 어김없이 얼음송곳이 등장한다. 인간의 내면에 잠재해 있는 성에 대한 엉뚱한 단상들은 사실 영화를 통해 무수히 다루어져 왔다. 성을 변태적이고 비스듬한 각도로 풀어낸 그 많은 작품 중 ‘원초적 본능’이 특별히 주목받는 이유는 성과 살인을 ‘본능’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캐서린은 ‘위험한 정사’(1988)의 알렉스(글렌 클로즈)처럼 감정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다. 성을 쟁취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살인으로 마무리한다. 대리만족은 영화가 주는 즐거움 중 하나다. 90년대의 여성들은 오늘날처럼 ‘미투’나 페미니즘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여성 상위의 위치에서 돈과 명예, 그리고 성까지도 자기만의 완전무결한 방식으로 취하고 즐겼던 캐서린은 당시 여성들에게 성적 쾌감, 대리만족 혹은 피해 보상의 상징이었을지 모른다. 캐서린은 살인 혐의에서 완벽하게 벗어난다. 여성의 남성 지배 스릴을 공유하는 상징물 얼음송곳을 당당히 범죄 현장에 남겨둔 채 팜므파탈의 완벽한 승리(완전 범죄)를 이루어낸다. 김정 영화평론가영화 영화 개봉 원초적 본능